영수증에 찍힌 금액은 그대로인데, 집에 와서 과자 봉지를 뜯어보면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기분 탓이 아닙니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시기에 기업들은 소비자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아주 교묘하고 똑똑한(?) 전략을 사용하곤 합니다. 가격표는 그대로 둔 채 제품의 크기를 줄이거나 성분을 바꾸는 방식이죠.
오늘은 우리가 마트와 식당에서 매일 마주치면서도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두 가지 변형 인플레이션, '슈링크플레이션'과 '스킴플레이션'의 실체를 파헤치고, 현명한 소비자가 되기 위한 구별법을 공유하겠습니다.
1. 슈링크플레이션, 가격은 그대로인데 양이 줄었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은 '줄어들다(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입니다. 말 그대로 가격은 고정해 둔 채 제품의 용량이나 개수를 줄여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효과를 내는 기업의 꼼수 마케팅입니다.
제가 자주 먹던 냉동 만두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예전에는 한 봉지에 10개가 들어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9개만 들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포장지 크기도 거의 비슷하고 가격도 그대로라 소비자는 쉽게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겉보기에 가격 인상이 없었으니 소비자는 저항 없이 지갑을 열지만, g당 가격을 따져보면 명백한 가격 인상입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많은 식품 대기업들이 초콜릿의 조각 수를 줄이거나, 캔음료의 용량을 355ml에서 320ml로 줄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슈링크플레이션을 적용해 왔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 차원에서 용량 변경 시 고지를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꼼꼼히 보지 않으면 당하기 십상입니다.
2. 스킴플레이션, 양은 그대로인데 품질이 떨어졌다?
슈링크플레이션이 양을 줄이는 것이라면,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은 한 단계 더 진화한 형태입니다. '인색하게 아끼다(Skimp)'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제품의 용량은 유지하되 핵심 원원료의 함량을 낮추거나 저렴한 대체재를 사용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100%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쓰던 소스 제품이 물가가 오르자 슬그머니 상대적으로 저렴한 카놀라유나 대두유를 섞어 만드는 식입니다. 대기업 음료에 들어가는 천연 과즙의 비율이 낮아지고 인공 향료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스킴플레이션은 서비스 영역에서도 자주 발생합니다. 예전과 같은 요금을 내는데 호텔의 청소 서비스 횟수가 줄어들거나, 식당에서 서빙 직원을 줄이고 태블릿 주문과 셀프 바 형태로 전환하면서 고객이 직접 몸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도 넓은 의미의 스킴플레이션에 해당합니다. 소비자는 같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실제로 받는 가치나 품질은 명백히 퇴보한 것입니다.
3. 기업들이 번거롭게 이런 방법을 쓰는 진짜 이유
기업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습니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폭등할 때 제품 가격을 대놓고 올리면 소비자들은 즉각 외면하거나 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뉴스 헤드라인에 "OO 제품, 가격 10% 인상"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순간 매출에 치명타를 입게 되죠.
반면 용량을 조금 줄이거나 성분을 살짝 바꾸는 것은 소비자가 즉각적으로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가격 저항선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기업의 마진을 방어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우회로인 셈입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가계부에 invisible(보이지 않는) 타격을 주게 됩니다.
4.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고물가 시대, 살아남는 방어 전략
이러한 교묘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소비 습관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마트에서 제품을 고를 때는 '전체 가격'이 아니라 라벨에 작게 적힌 '10g당 가격' 또는 '100ml당 단위가격'을 확인하는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묶음 상품이나 대용량 제품이 무조건 싸다는 편견을 버리고, 단위당 가격을 비교하면 슈링크플레이션의 함정을 쉽게 피해 갈 수 있습니다.
둘째, 자주 구매하는 가공식품의 경우 뒷면의 '원재료명 및 함량'을 가끔씩 사진으로 찍어두거나 기억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핵심 성분의 비율이 갑자기 낮아졌다면 품질이 떨어진 것이므로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브랜드나 PB(대형마트 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핵심 요약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격은 그대로 두고 제품의 용량이나 크기를 줄여 실질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현상입니다.
스킴플레이션은 용량은 유지하되 저렴한 원료를 쓰거나 서비스를 축소하여 제품의 품질을 낮추는 현상입니다.
기업은 소비자의 즉각적인 가격 저항과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이러한 우회적인 인상 방식을 택합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구매 시 '단위당 가격(g당 가격)'을 반드시 확인하고, 원재료 함량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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